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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2>, 이덕일, 다산초당 운영자 2026-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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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2>, 이덕일, 다산초당

 

<왕과 사는 남자>가 유행이다. 천만 관객을 넘었다. 요즘 대세도, 감독인 ‘장항준식 사고방식’이라고 한다. 어렵고 가난했던 결혼 초 에피소드에 그 사고방식이 보인다. “오빠, 어떡해? 쌀이 없어 – 라면이 있잖아”, “오빠, 어떡해? 가스가 안 나와 – 부르스타가 있잖아?” 대놓고 긍정형이다. 이 사고방식을 기꺼이 존중한다. 감독은 현종실록에 실린 한 줄 문장을 세상에 꺼내놓고 천만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 “노산군이 해를 당했을 때, 시신을 거두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그 고을의 아전 엄흥도가 즉시 가서 곡림하고 스스로 관곽을 준비하여 거두어 묻었으니, 지금의 이른바 노묘이다”

 

1457년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사람이 있다. 영월의 호장, 엄흥도다. 목숨 걸고 한 시대의 죽음을 끌어안은 사람의 이야기다. 그보다 1,5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예수의 시신을 수습한 사람 아리마대 요셉의 이야기가 있다. 이 기록도 한 줄이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의 시신을 수습한 후 빈무덤을 경험했다. 부활경험이다. ‘장항준식 사고방식’으로 보면 대놓고 긍정을 넘어 초긍정의 경험세계다. 감독은 현종실록의 한 줄 문장으로 국민의 정서를 매만졌다. 그 장인정신이 성경의 한 줄 문장을 발견하면 엄흥도가 살아났듯, 아리마대 요셉도 천만 관객 이상에게 살아나지 않을까. 차이가 있다. 현종실록은 죽음의 사실 기록이고, 요한복음은 부활의 사실 기록인 차이다. 

 

역사를 오늘의 시대에 살리는 일에, 반드시 꼽아야 할 인물이 있다. 정약용이다. 그리고 그의 이복 맏형 정약현, 둘째 형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 셋째 형 정약종이다. 부친은 정재원(1730-1792). 첫 부인 남씨가 장남 약현을 낳았고, 후취 윤씨가 약전, 약종, 약용과 이승훈의 부인이 된 딸을 낳았다. 

 

정약용을 둘러싼 가족의 서사가 민족의 서사를 다채롭게 열었다. 잠시 서사를 소개하는 이유다. 약현의 부인은 이벽의 누이였고, 이벽은 새로운 사상을 모색하다 성경을 읽고 스스로 기독교인이 되었고, 이후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고 한반도에서 세례를 받은 첫 번째 세례자가 되었다. 약현의 딸 명련은 황사영과 혼인한 관계로 고초를 겪었다. 약전은 정조 사후 흑산도에 유배되어 ‘자산어보’, ‘송정사의’ 등의 저술을 남겼다. 약종은 다른 형제들보다 기독교를 늦게 받아들였으나 정조 사후 국문을 받고 참수당했다. 정약용 형제의 매형인 이승훈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사형당했다. 이벽은 정약용에게 처음으로 기독교를 가르쳐 주었다. 배교 압력을 받다가 병사했는데, 일각에는 독살설도 있다. 

 

조선후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정약용과 형제들이 있었다. 단면만 본다. 노론은 주자학 유일사상을 추구하는 당파다. 현실은 노론이 장악했다. 주자학은 조선후기 유일사상이자 관학이 되었다. 반면, 남인은 주자학 외에 다른 학문에 열려있었고 갈급했다. 남인은 과거에 응시할 수 없던 역설이다. 남인들이 모인 장소가 있다.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인 천진암이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에 있다. 이곳에서 1779년 강학회(講學會)가 열리면서 남인들에게 서양학문이었던 기독교가 종교가 되었고, 세례 교인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조선후기 소용돌이 속에서, 정약종은 순교를 택했다. 정약용은 현실 정치를 택했다.  정약전은 사람을 택했다. 갈래는 달랐어도, 뿌리와 가는 방향은 같았다. 예수 안이다. 사실, 이들 이야기를 한 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이야기는 그야말로 파란만장(波瀾萬丈)이다. 그럼에도 이들을 역사에 되살릴, 한 줄 문장이 제대로 남겨지지 않았다. 어쩌면 이들을 보여주는 수많은 문장들이 있음에도, 오늘의 역사에 부활시킬 한 사람이 없다는 것은 불행이다. 한국 사회가 복음을 받아들인 루트를 닫아놓는 격이다.

 

이 마당에, 한 줄 문장에서 천만 관객의 심금을 울린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 마당에, 복음의 중요한 루트에 과묵한 신앙인들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 이런 이유에서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을 개신교인들의 필독서로 꼽는다. 출중한 글을 이덕일이란 분이 썼다. 이미 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도 나와 있으니 함께 두고두고 읽으면서 한 줄 문장으로 시대를 살리는 그 한 사람의 반열로 가자. 사순절기에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그만 보고. 

 

<서초 주님의 몸된 교회>유성원 목사

 

 

출처 : 당당뉴스(https://www.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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